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
- “잠 걱정 내려놓기부터”… 불면증 강좌 가능성 확인 -
● 행동경제학 ‘결핍 이론’ 불면증 교육에 처음 접목
● 대중 심리 교육 4주 뒤 수면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불면 증상 의미 있게 개선
● 강연 영상은 유튜브에 무료 공개… “전문 치료 받기 어려운 환자 첫 단계 가능성”

▲ 분당서울대병원 유튜브에 공개돼 있는 윤창호 교수의 수면 건강강좌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 연구팀이 60분짜리 공개 건강강좌를 한 번 듣는 것으로 불면 증상이 개선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강연 4주 뒤 추적 조사를 마친 참여자의 72.4%가 “불면 증상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고 답했다.
불면증은 성인 3명 중 1명이 증상을 겪을 만큼 흔하다. 가장 먼저 권하는 표준 치료는 약이 아니라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다. 잠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바로잡는 치료인데, 훈련받은 전문가에게 4~8회에 걸쳐 받아야 해서 실제로 치료받는 환자는 많지 않다. 연구팀은 이 문턱을 낮추는 방법으로 대중 강연에 주목했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잠 걱정이 마음의 여유에 세금을 매긴다
강연의 뼈대는 행동경제학의 ‘결핍 이론’이다. 돈이나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그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어 시야가 터널처럼 좁아지고 판단력도 떨어진다는 이론이다. 윤 교수는 이를 잠에 적용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집중력과 판단력을 100이라고 하면, ‘오늘도 못 자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그 일부를 먼저 가져간다. 월급에서 세금이 자동으로 빠져나가듯, 쓰기도 전에 떼이는 몫이다. 남은 여유로 하루를 버티다 보면 집중이 안 되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진다. 이를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걱정은 더 커지고, 밤에는 더 긴장해 잠이 달아난다. 결핍 이론을 불면증 교육에 적용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강연은 세 단계로 구성됐다. 먼저 불면이 이어지는 원리를 이해하고, 이어 걱정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며 잠이 오지 않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힌다. 마지막으로 졸릴 때만 눕기,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같은 수면 습관을 배운다.
4주 뒤, 잠에 대한 잘못된 믿음 25% 줄어
연구는 2026년 3월 분당서울대병원 대강당에서 열린 불면증 건강강좌 참석자 18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참여에 동의한 81명에게 강연 직전과 직후, 2주 뒤, 4주 뒤 네 차례 설문을 했다. 이 가운데 강연 직전 첫 설문에 응답한 59명 중 네 차례 모두 응답한 29명(평균 71세, 여성 72%)의 변화를 분석했다.
강연 4주 뒤 참여자의 72.4%가 불면 증상이 전반적으로 호전됐다고 응답했고, “하루라도 못 자면 다음 날을 완전히 망친다”처럼 불안을 키우는 ‘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25% 감소했다. 불면 증상은 20%, 수면 걱정이 일상의 정신력을 소모하는 정신적 부담은 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 4주 추적을 마친 29명의 평균 점수 변화. 점수가 낮을수록 좋음. 색띠는 95% 신뢰구간
이런 개선 폭은 여러 주에 걸친 자가치료·온라인 인지행동치료 연구에서 보고된 것과 견줄 만한 수준이다. 나이와 성별을 고려하거나 중간에 응답을 멈춘 참여자까지 포함해 분석해도 결과는 같았다.
변화가 나타나는 순서도 눈길을 끈다. 불면 증상은 2주 뒤부터 좋아졌지만, 잠에 대한 믿음은 4주째에야 뚜렷하게 달라졌다. 한 번의 교육이 시간을 두고 생각의 변화로 이어진 셈이다.
강연 직후 설문에 응답한 40명이 꼽은 가장 큰 깨달음은 ‘억지로 자려 하지 않고 지금 상태를 받아들이기’(52.5%)였고, ‘걱정을 나와 분리해서 바라보기’(22.5%)가 뒤를 이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강연, 치료의 첫 단계로
이번 강연은 분당서울대병원 유튜브에 무료로 공개돼 있어 누구나 반복해서 볼 수 있다. 연구팀은 전문 치료를 받기 어려운 환자에게 강연을 먼저 제공하고, 호전이 없으면 본격적인 치료로 넘어가는 ‘단계적 치료’의 첫 단계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연구는 비교 대상(대조군)이 없는 예비(파일럿) 연구로 4주 추적을 마친 참여자가 첫 설문 응답자의 절반 수준(49%)이고, 고령·여성 중심의 단일 기관 참여자가 스스로 답한 설문 결과라는 한계도 있다. 연구팀은 같은 참여자를 6개월간 추적하고 있으며, 대조군을 둔 무작위 대조시험과 수면다원검사 같은 객관적 수면 측정 등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창호 교수는 “‘오늘은 꼭 자야 한다’는 노력 자체가 뇌를 깨운다”며 “잠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잠이 오지 않는 지금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번의 강연이 치료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치료 문턱 앞에 서 있는 많은 분께 첫걸음이 될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수면연구학회와 호주수면학회의 공식 학술지 ‘SLEEP Advances’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