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침사자격을 취득했다고 주장해 온 구당 김남수 씨의 자격증 진위논란에 대해, 법원이 "일제시대에 침사 자격을 취득한 사실이 없다"는 판시를 내렸다.
31일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구당 김남수 씨는 평소 "해방 전인 1943년 4월, 함경북도에서 실시한 침사자격시험에 합격해 함경북도지사로부터 침사자격을 취득, 현지에서 ‘금천침술원’을 공동으로 개설·운영해 왔으나 해방 이후 월남하면서 침사자격 면허증을 갖고 오지 않았다”고 설명해왔다.
또 김남수 씨는 "1983년 함경북도에서의 이 같은 경력을 보증할 수 있는 다른 침사들의 도움으로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적법하게 침사자격을 재발급 받았다"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는 "김남수 씨가 일제시대에 함경북도 또는 고향인 전라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력보증의 방법이 매우 허술하게 규정돼 있는 점을 이용, 이북5도 도지사로부터 경력인증원을 발급받아 이를 근거로 침사자격 확인의 소(1983년 대법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김남수 씨가 일제시대에 취득한 침사 자격에 대해 1983년 법원의 판결을 통해 적법하게 재발급 받았다는 것은 허위의 사실이라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시에 대한 근거로 김남수 씨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전라북도 군수서장이 침구사 추천을 해 도지사에게 올려 지난 1943년 침사 자격증을 받게 됐다’고 답변했으나, 이는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획득했다는 대법원의 판결 내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점을 들었다.
또 뜸사랑 모 인사가 작성한 ‘무극보양뜸을 통해 본 구당 김남수의 의학사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의하면, 김남수 씨는 1915년 전남 광산군 안청리에서 출생했고, 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고 기재된 점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김남수 씨 지인과 조카 역시 모 방송사 인터뷰에서 김 씨가 태어나서부터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계속 고향에서 살았다고 말해왔다.
특히 조카는 김남수 씨가 함경북도에 살았던 일은 없으며, 부친 사망 이후 부친이 갖고 있던 침 뜸에 관한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침 뜸을 배웠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친형과 함께 고물장수를 하다가 침 뜸 스승을 만나 이를 배우게 됐다고 말한 점도 침사 자격증이 허위인 증거라고 밝혔다.
이밖에 재판부는 ▲김남수 씨가 자신의 고향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했다면, 굳이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할 이유가 없고, 함경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했다면 굳이 전라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꼽았다.
김남수 씨가 전라북도에서 침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는 점도 김 씨가 일제시대에 취득한 침사 자격에 대해 1983년 법원의 판결을 통해 적법하게 재발급 받았다는 것은 허위의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한의사협회측은 "이번 건은 지난 2010년 11월 3일 방송됐던 SBS TV 뉴스추적 ‘현대판 화타, 구당 김남수 미스터리’에 대해 김남수 씨 측이 정정 및 반론보도를 요구하며 제기한 소에 대한 법원의 판시한 내용"이라며, "지금까지 한의계에서 제기해 왔던 구당 김남수 씨의 침사 자격 허위논란을 법원이 처음으로 명확히 밝혀준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남수 씨는 선량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뜸요법사’라는 불법 민간자격증을 남발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현재 주간동아 등에서 제기해 기소 중인 백억원대의 뜸사랑 회원 교육비에 대한 영리취득과 관련된 재판에서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협회 측은 덧붙였다.
이와 함께 대한한의사협회는 "아무리 30년 전 일이라고 하더라도,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자격과 면허가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점에 대해 의료인 단체로서 경악과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향후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보건당국이 철저한 관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